어느 외국인 부부의 사랑 “제 콩팥을 이식해 주세요”

  • 등록 2016.07.11 15: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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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교수
건국대병원 신장내과



어느덧 새 병원이 신축 개원한지도 10년이 되었고 우리 병원에서 신장이식을 한 역사도 같이 하고 있다. 비록 다른 큰 병원들에 비해 많은 사례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우리 팀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중에 특히 생각나는 경우는 외국인 사례로 서울 시내에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을 한 경우이다.


환자는 부인으로 목사 수업을 받는 남편을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2006년부터 투석을 하고 있었다. 신장은 다른 장기와 달리 망가져도 투석이라는 대체 수단이 있어서 이식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물론 이식에 비해 예후가 나쁘지만 전혀 대체 수단이 없는 다른 장기에 비해 그래도 이식을 못하는 경우에도 희망이 있다는 점은 좋다.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 고국에 돌아가면 투석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그런데 환자에게는 C형 간염이라는 또 하나의 난치병이 있었고 이 병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식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는 우리말이 서툴기도 하지만 원래도 좀 내성적인 성격인 듯 보였다. 어떻게 보면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의 감정, 타국에서 어렵게 치료 받아야 하는데 대한 절망감, 이런 것들 때문에도 거의 항상 굳어 있는 표정이었다. 반면 남편은 긍정적인 편이었고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C형 간염의 치료는 말기 신부전 환자에서는 치료약이 제한적이라 어려운 편이다. 이 환자에서도 실제 만족스럽게 치료되지 않았지만 환자, 보호자는 이식 외에는 선택할 길이 없었으므로 모든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이식을 받겠다고 하였다.


공여자는 환자의 여동생이었는데 비교적 젊고 건강해 보이는 편이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철결핍성 빈혈이 있었는데 이 나이 때 여자에서는 흔한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빈혈이 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할 수 없고, 어차피 환자도 간염 치료가 끝나야 이식을 할 수 있어서 철분제를 복용하게 하고 회복 이후 수술 일정을 맞춰서 이후 검사를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가슴 사진에서 심장 음영이 크다는 판독 결과가 이후 확인되었다. 언뜻 봐서는 모를 정도였는데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해서 심장혈관내과 선생님께 의뢰드렸드니 놀랍게도 선천성 심장병이 진단되었다. 여동생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이후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환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공여자가 없어져 버렸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다른 공여자를 찾아 보기를 권하는 수 밖에 없었다. 부부간에도 이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혈액형이 맞는 경우이고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상기된 표정으로 진료실을 찾아서 자기 콩팥을 이식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이미 이전에 혈액형이 달라서 어렵다고 말했는데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하고 어이 없어 하고 있는데 자기가 알아 봤는데 혈액형이 달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도 학회에서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알아 보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문헌 고찰을 해보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경험이 있었고, 특히 뇌사자 이식이 제한적인 일본에서의 경험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의 사례는 별로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선배들의 직접적인 조언을 들어야 할 것 같아 서울 시내에서 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몇몇 병원의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년에 200례 가까이 수술을 하는 병원에서도 아직 경험이 없었다. 지방의 병원에서 몇 예의 보고가 있었지만 서울 시내 병원들은 시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사례도 아니고 C형 간염도 있는 환자에서 문헌만 보고 혈액형 불일치 이식을 잘 할 수 있을 지 사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너무나 긍정적으로, 길을 찾았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그 길이 오히려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환자, 보호자들은 겪어보지 않았으니 나쁜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경험으로 나쁜 결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환자, 보호자들은 막상 닥쳐서야 알게 되니까 그 상황에서 간극을 메우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나도 경험이 없으니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에서 초창기에는 면역억제를 위해 비장절제 등 더 복잡하고 위험한 수술적 과정을 거쳤지만 그 무렵에는 약물로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최신의 경향을 따라 약물을 선택하고 수술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대부분 어려운 경우 경험 있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서 결정했는데 이 경우에는 문헌만을 보고 내가 결정해야 하고 결국 그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 힘들게 하였다. 논문에 나온 내용은 다 제 각각이고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는 충분하지 않은 데이터를 종합하여 내가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C형 간염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고 이식 후에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6년의 시간이 지났다. 수술 후 환자에게 몇 번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식 환자에게 생기는 문제와 비슷하였고, 잘 치료되어서 염려했던 것에 비해 신장 기능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키닥터 기자 pgjin546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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