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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그 가족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의사이기를




천영국 교수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평소와 같이 아침 회진을 끝내고 외래 진료를 위해 진료실 문을 여니 책상에 조그만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선뜻 떠오르지 않는 주소였습니다. 상자 속에는 조그만 양주 한 병과 편지가 있었습니다. 


“... 남편과 처음 알게 된 날부터 함께해온 시간이 벌써 30년이 되어 갑니다. 집에 없을 때가 아니면 싸워도 꼭 한 이불을 덮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살아 왔던 우리 부부. 매주 토요일 마다 남편을 찾아 갑니다. 그곳에서 환하게 웃는 남편 사진, 유품 몇 가지를 보며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가슴이 아려 옵니다. 교수님께서 4개월에서 6개월 남았다고 하셨을 때도 저는 아닐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담낭암으로 오래 동안 치료 받다가 돌아가신 분의 부인이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살아생전에는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마다 따님이 아버지 모르게 찾아와 예쁜 꽂 무늬 편지에 동글동글한 여자 특유의 예쁜 글씨체로 써내려간 편지를 전해주곤 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해요, 요즘 아빠가 많이 좋아졌어요. 오래 동안 저랑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요즘 아빠랑 많은 시간을 갖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허락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이런 편지를 받을 때는 의사로서 뿌듯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환자의 경과를 알고 있고 이 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게 되면 이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아픈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병은 가족 모두를 아프게 합니다. 가벼운 병은 오히려 가족의 사랑을 더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적적한 치료 시기가 지난 암인 경우에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너무나도 큰 짐이 되기도 합니다.


신0식님은 담낭암으로 진단받고 수술 후 1년도 안되어 재발이 된 경우였습니다. 이로 인해 황달이 발생해 여러 차례 황달을 줄여주기 위한 내시경적 담즙 배액관을 시행받아 오던 환자였습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부인과 딸 모두 삶에 강한 집념이 있어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고 항암제에 대한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고 설명하였어도 무엇이든지 간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치료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항암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진행성 담낭암은 6개월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고, 또한 효과적인 항암제가 별로 없는 질환입니다. 처음 나를 찾아 왔을 때 가족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였으나 가족들은 남편이고 아버지인 그 분을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내 의견에 따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가족의 사랑의 힘일까요? 신0식 님은 병의 진행 상태가 더디어 지더니 종양의 크기도 줄기 시작해 항암제 투여 후 1년 반이 지나서도 생존해 있었고 심지어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이건 기적이었습니다.


물론 여러 차례 고비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담즙 배액관이 막히면서 항암제로 인한 면역 기능의 억제로 담도에 염증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간농양이 발생하고 다시 패혈증으로 이어져 혈압이 떨어지고 급기야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내원했습니다. 바로 중환자실로 입원해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시경을 통해 담도 배액관을 교체해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러는 동안 신0식 님의 아내와 딸은 오히려 의사인 나에게 믿음을 주고 ‘선생님 제발 우리 아빠를 포기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의사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신만이 주고 가져 갈수 있는 것, 그러나 치료를 부탁 받은 사람으로서 의사의 역할은 가족의 마음처럼 아픈 사람의 옆에서 내가 알고 있고 내가 할 수 무엇인가를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2-3일이 지난 뒤에야 환자는 혈압이 정상으로 올라가고 의식도 회복이 되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기적은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그런 고비 들을 넘긴 지 3개월 뒤에는 더 이상 항암제에 효과가 없다는 듯이 종양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했고 간 내에는 다발의 농양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부인과 따님을 불렀습니다. 그 분들은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족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이제는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환자 자신의 생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는 아버님의 뜻에 따라 평소 아버님이 생활하시던 집 근처 병원에서 보존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자기 생활을 정리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내와 따님은 나를 많이 원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포기해도 그 동안 치료를 해온 나만큼은 포기 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는 말을 그 편지에 적어 놓았더군요.


나는 환자를 그렇게 집근처 병원에 내 제자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으로 옮기게 한 뒤 제자를 통해 환자의 근황을 묻곤 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지 일주일 뒤에 신0식 님은 그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세상에 두고 떠났습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2달이 지나서 아내분이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잡으려고 하는지, 병들어 있는 남편이라도 옆에 있어야 힘이 된다고들 했는지, 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늙어 가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함과 보고 싶음에 울음을 토해 내며, 그래도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 하기에 출근을 합니다. 교수님. 남편이 완치가 되어 퇴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람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그 동안 남편 치료를 위해 애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의사에게 환자, 아니 아픈 사람을 무엇일까요? 그저 나를 찾아온 많은 아픈 사람 중에 한사람은 아니기를 오늘도 그 누군가에게 빌어 봅니다. 아픈 질환만을 치료하는 직업적인 의사가 아닌,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가족의 사랑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의사이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다듬으면서 회진을 돌기 위해 방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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