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교수
가정의학과
진료실로 60대 중반의 여성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최근에 시행한 건강검진 자료를 내밀었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이상 소견이 하나도 없이 모두 정상 소견들이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되어 검사 소견이 모두 정상으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그럼, 내가 건강한거냐?”고 되묻습니다. 건강검진으로 검사한 항목에 대한 질병은 없다고 말씀드리니 “병이 없어도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왔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들어 가장 관심이 많은 주제는 ‘건강’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개념은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는 것은 당사자의 자랑이요 가족의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환갑잔치를 한다고 주변에 얘기하면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에 환갑잔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긴, 2013년 통계청이 발표한 평균수명은 남자는 78.0세, 여자는 84.6세이니, 이 정도라면 80세 정도는 되어야 잔치라는 것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99팔팔23사’라고 해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3일 앓다 죽고 싶다’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좀 더 적극적이고 변화된 건강개념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해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당연히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개념적으로 포괄하는 말이 ‘건강증진‘인데 이는 1986년 오타와 헌장에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하고 향상시키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과정‘으로 정의하였습니다.
건강증진은 우리들 각자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각기 다른 능력을 물려받고 태어났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건강상태는 개인마다 다르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런 개인의 건강상태는 유전, 환경, 건강관련 행위의 세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되며 이중 건강관련 행위가 개인의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사람의 사망원인 중 50%가 불건전한 건강행위나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건강증진은 질병의 조기진단과 건강증진으로 나누어 질 수도 있는데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질병이나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건강한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라는 표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둘째, 개개인의 상태나 특성에 맞게 개인적으로 적용됩니다. 셋째, 한 가지 질병이나 증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전체적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넷째, 질병이 발생할 위험을 사전에 예방합니다. 다섯째, 건강해지려는 개인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참여합니다. 이에 대해 기존의 전통적인 질병치료와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이런 건강증진에 대한 효과는 여러 근거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미국 Alameda 지방에서 시행된 연구입니다. 45세 남성에서 흔히 ‘Alameda 7'이라고 불리는 건강관련 행위들, 즉, 하루에 7-8시간 수면, 아침식사를 매일 함, 간식을 하지 않음, 적절한 체중 유지, 규칙적 운동, 술은 적당히 마시거나 안 마심, 금연 등의 7가지 행위 중 3가지 이하만을 실천했을 경우의 잔여수명은 22년이었지만, 5가지를 실천했을 경우는 28년, 6가지 이상을 실천했을 경우는 33년으로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또한 이런 건강관련 행위들은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수명‘ 즉,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간을 증가시키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행해지는 기존의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개인이 참여하는 건강증진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아이템이 되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질병을 가진 채로 겨우겨우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으로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입니다. 건강은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인 것입니다.